시인 방

시인 마을에 오세요. ( 시집 : 재즈가 흐른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 )

Ariell 2009. 7. 26. 00:18

 

 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

 

 

 

  산은 고요한데 화산처럼 터져 나오고 싶은 뿌리, 팽팽한 땅 밀어내며 솟아오르는 비행기 한 대 내 안에서 이륙한다 탈출을 시도해보라는 신호 초록 영혼이 속에서 윙윙댄다 연회색 주둥이 물새가 같이 날자고 창가서 손짓한다 나는 튀어 오르거나 날거나 떠나지 못한다 재즈 속에 멀리 있는 너를 데리고와서 조각조각 분해시키며 뼈들 걸어다니는 잔인한 거리에 선다 쾌락의 뿌리 흔들어 본다 어색해, 왜 화려한 즐거움에 익숙하지 못할까 네 심장 밑으로 밀어 넣고 싶은 언어 몸짓으로 드러내지 못하나 안에는 짙은 재즈의 음률 조율되어 있는데 초록 영혼 가지 뻗을 분출구 어디서 찾나 순결한 시간은 구르는 돌 옆, 흰 제비꽃으로 서있나 이름 새겨준 바람마저 떠나보내고 있나 재즈는 몇 곡 째 흐르고, 창 너머 비행기 한 대 내 속에 착륙한다 몹시 덜커덩거린다


 

 

   숲이 유리 안에 서있다 


 

 

  그렁그렁한 유리, 눈물 맺혀 흔들리다 불현듯 안으로 손을 뻗어 나를 만져보고 싶어한다 훤히 볼 수 있지만 건너 올 수 없는 너와의 거리, 나는 너 안에 갇힌 가엾은 나무, 탈출할 수 있다 비바람 부는 이 밤 지나면 산으로 돌아갈 수 있다
  숲은 아침에 제 자리로 돌아갔다 허리잘룩한 개미 무수한 애벌레들 젖은 어깨 털며 웅성웅성거리며, 어젯밤 유리 속의 집이었다 다시 유리에 기대어 흔들리다 무성한 숲을 본다 아, 그것은 뼈대 없이 흔들리는 내 모습이었다 만져보고 싶지만 만져지지 않는 또 다른 나였다

 

 

 

춘설春雪

 


어제 본 나비야 어데 숨었니,
먼지의 요람 속 하늘하늘
노랑 물 절인 날개 접어 짚 덤불 속 숨어있니
모락모락, 산 안개 달콤한 발톱 내 밀며 속삭였지
대문 밖이 환하다 빨리 날개를 달아라
행복하다고 믿는 봄볕 때문에
문밖 쑤시는 아픔 있는 줄 몰랐지

무늬 돋아 꽃 돌아오고 아지랑이 출렁출렁 길 지우는데

벚꽃 더미아래 우체부 아저씨 빨간 마음속
연두 빛 질주하고,
노랑 물 흠뻑 들이켜 가는 허리 넌출넌출
바람, 바람은, 산 옆구리 밟고
첨벙, 비어있는 갈비뼈 밑 혀 자국내며
춘설春雪이다
머리 속이 덜거덕거린다
백치처럼 하얗게 도배된다
새 한 마리 남쪽으로 치닫고
설레던 가슴기슭을 파헤친다
어제 본 나비야 어데 숨어있니
언 날개 파닥거리며 등이 시리지
꽃은 기다리지 않고 산이 춥구나

 

 

 水晶, 깨뜨리면 어둠이


 

바라보기에 따라
물무늬 안으로 실종되어
방울방울 눈물주머니 있네
그 투명함이 오히려 감옥 되어
무지개 빛은 단단한 돌 속이 집이네

돌 깨뜨리면 무지개 속, 내가 웅크리고 있네
푸른 바람에 수유하고 싶은 젖무덤이
두견은 꽃잎 한 자락 끌고 와 검은 주검을 덮었네
어머니, 꽃 등불은 돌무덤 위에도 소풍 오는데
간절한 영혼 빠져 나와
감꽃 줍는 아이의 손톱 끝에
매달린 슬픈 이슬 보이셔요
술 취한 아비가 황새피기 같아
주검처럼 뻗은 강이 되었네
그래, 흘러가야지 역류하여 풀 한 포기
물고기 한 마리 눈물 떨구지 않았는지
보듬어 줘야지

 

 

 

아스팔트 아픈 살갗을 엽니다

 


 

세한도 그림 한 장, 벽에 눕고
깜깜한 영혼
아스팔트 깔린 지 오랩니다
나무 가지 툭툭 부러지는 소리
눈보라 뒤에 숨은 그림자 없는 인적
고요함마저 걸어나오는 악몽입니다
발등 쫄깃쫄깃 갈라지자
개미귀신 틈 사이로 들락날락
빛을 조각조각 파먹고 물린 혀를 말아 올립니다
잃어버린 언어 앞에서 개미귀신 모든 귀와 눈을 교란시킵니다
아스팔트 뒤틀리며 독감 앓고

봄비보다 덜컹거리는 겨울빗소리
꽉 다문 살갗 탁탁 터지며 열립니다
숨소리도 능청스럽게, 아득한 천동설 달려와
긴 발가락 뻗어 지구둘레를 돕니다
개미귀신 빗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척박한 혈관 속 꿈틀거리던 애벌레와 작별하면
아스팔트 옛날의 바퀴와 발자국 찾아 납작 엎드린 채
알록달록 우산위로 겨울빗소리 찰박찰박 여행 떠납니다

 

 

 

 맥문동


 

오십 년 묵은 가슴에 삽질합니다
삽 끝, 소낙비 피해가던 초막 있고
살 돋은 피라미 떼 쫓으며
튀밥 같은 웃음 게워 냅니다
개울가 버들피리 불던 동생 발가락이 보입니다
동글동글 동생 발가락 끝 닮은 맥문동
시커먼 가슴 뒤집어 막 캐낸,
그 맥문동 씻는 할머니의 시린 손
찔래꽃 넝쿨 채 걸어나와
침침한 할머니 눈 속으로 들어갑니다
향기로운 냇가, 할머니 가슴에 주렁주렁 맥문동 매달립니다
긴 시간 두엄으로 쌓인, 할머니 마른 가슴 열어봅니다
겨울 들판, 푸른 촉수 오기로 버틴 맥문동 줄기
할머니 실핏줄 사이사이 뿌리 뻗었습니다
삽 끝, 회색 몸부림 응고되어 딱딱해도
할머니, 당신의 가슴 우주를 끌어안아도 넉넉합니다


 

 

봄비에 잠기다

 

 

빗소리, 귀를 잡아당긴다
물소리 보다 빗소리는 통통해,
봄비 소리는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이야
부드러운 바람처럼 몸을 밟고 몸 속이 젖고있어
끝없이 길을 가고있어
갈증에 몸 비틀던 상처 속으로 흙 일으켜 세우고 있어
꽃 걸어오는 길 소풍 가자고 쉬운 암호 보내지만
빗장 건 마음은 웅크리고 있어
유리 고드름 심장 박혀 녹일 수 없지
따뜻한 손 빌려줘 가슴을 눕히고 쉽게 눕는 것 네 운명이지
미끈거리는 체내, 깜박 놓친 기억이 파랗게 갇혀있어
부셔버리자 떨리는 소식이 걸어오고 있어
싸르륵싸르륵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봄비 소리 새들 잠 깨우고
꼭 안아보고 싶은 새 한 마리
저 봄비 속에 넘실거리며

 



만두 빚는 남자


 

 

내 모르는 사이 하현달이 떴다
욕구불만인 남자의 둔부를 닮은 저 느림보 달
부정한 육감이 내 대뇌에 손 집어넣는다
짜릿하게 촉진되는 교감 신경
천궁꽃 줄기로 찌르고 들어가 발열한다
풍덩, 바다에 빠진다
음탕한 바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소금기둥을 낳는다
소금기둥 여러 형상으로 떠돌다
겨울 창가 만두 빚는 남자가 되었다
순결한 눈과, 차디찬 돌과
푸석한 흙으로 만두 빚는 것 죄가 되는 것을

버린 반쪽 기억하지 못하는 하현달
백혈구 죽어가고 득실거리는 나쁜 세균
남자의 각막 쪼아먹는 우울한 새 한 마리
배고픈 듯 하현달 히죽 웃는다
새 부리 자르고 깃털 뽑아 달의 혈소판을 막는다
내 모르는 사이 하현달
욕구불만의 남자가 삼켜버렸다

 

 


 

몸과 마음의 틈 사이 자주 삐거덕거린다
기름기 빠진 연골 아파하고 소리지르면
물기 가득 감춘 선인장 가시 내밀며 접근 금지를 외친다
바람은 육신의 틈 노려 황토색 흙발 집어넣는다
시린 발끝, 시린 손끝, 늑골 사이 손 넣어 휘젓는다
황토 물 육신 구석구석 철벅인다

어릴 적 뒷산 동굴 찰흙 캐러 갔다
뚝뚝 떨어지던 물 벽 사이 뻥 뚫린 틈 보며 앙- 울어버린
그 틈은 거대한 함성으로 내 안에 긴 동굴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복숭아 속의 애벌레를 먹고
첫사랑은 그 동굴에서 한 쪽 팔을 잃었다
동굴 속을 떠다녔다, 어머니의 입 벌린 틈은
내 육신의 동굴이 되어 바람이 들락날락
꿈처럼 메울 수가 없었다
풍경 소리는 해가 저물어
부처는 내 어머니 천리 낭떠러지로
뒤돌아보는 젊은 내 어머니 땅강아지 같은 자식 업고
동구 밖에서 기다리시던 뒷모습
언제나 몸이 젖은 연꽃, 숭숭 구멍 뚫린 뿌리,

 

 

山門이 열리다


 

 

山門을 열고 들어섰다
얼음 손에 상한 뿌리들 시름시름 앓던
나무들의 휑한 울음소리
산은 다른 산 안에서 우뚝 서 있다
한 자락 산 끝에서 꽃불 타들어 간다
유혹적인 빛을 밀어내며
태양 반대 방향으로 어둠 따라 들어갔다
조장(鳥葬) 때 인육 먹은 새들이
하늘로 오르지 못한 영혼들과 울고있다
푸른 낮달 두려운 계곡의 혀를 깨물고
빛은 따라다니며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내 몸이 출렁거리며 열꽃이 돋았다
부드러운 바람 실눈 뜬 초록들 배를 띄운다

내 속은 왜 이렇게 고요할까
두충나무 뒤 숨은 낮달 밀어 넣어도 닿지 않는 하늘,

마을 뒤에 산이 서고 산 앞에 내가 섰다
노란 침묵 잦아 올린다 툭툭 터지는 소리
山門을 연다 가벼운 것은 찬란한 빛이었다
山門은 크게 입벌리며 내 속을 탐닉했다
출렁거리는 몸 헐어 山門에 확 뿌렸다
샛노란 산수유,

 

 

 

  자두꽃

 

 

  보름달에 이끌려 자두꽃밭 언저리에 닿았다 바람은 산기슭 어디에 잠들었는지 따라나서지 않고 시냇물 자주 몸 뒤척이며 흐른다 희멀건 달빛아래 부채춤 추는 흰나비떼 꽃잎,

 

알몸에서 향내가 난다 손안에서 물커덩거린다

 

지난 꽃샘추위 붉은 울음, 푸른 울음, 꼭꼭 감춘 하얀 꽃잎 우레처럼 들끓던 꽃물 밀어 망울망울 꽃피운,

먼 산 검은 이마 드러내고 눕자 견고한 길들 일제히 일어나 지금 막 허물벗는 달빛 속으로 무수히 뛰어든다 산기슭 어디선가 잠자던 바람 푸르르 달려든다 놀란 자두꽃 깨어나 눈비비고, 산밑 마을 개 짖는 소리 후두둑 떨어져 날리는 꽃잎, 꽃잎, 꽃잎들,

 
 
 

 

우기雨氣

 

 

 

저 구름 놀음을 보라, 구름놀음 속에서 흙 반죽하고 싶다
콧등 뭉개진 산, 손가락 넣어 쿡 찔러 본다
산의 정기가 빨려 나갔군,
하늘은 산의 목 잘라 퍼런 피 솟구치고 있다
온갖 미물들 달아난다
작은 집 허물어질까 뒤돌아보는 붉은 머리 오묵눈새 한 마리

퍼런 피와 질긴 찰흙, 붉은 황토 흙 섞어 바람 없는 집을 짓는다
말못하고 흔들리는 숲을 빚는다
달아나는 구름,
성난 내 심장 박동, 재발한 악성 화 덩어리,
찰흙과 반죽하여 다시 태어난다면 기차가 되리라
칸 칸마다 탄력 있는 심장 달고 저마다
가슴 다른 역 지나며 풀잎 흔드는 작은 손, 발작하는 느티나무 잎 깨물며
말없이 돌아오기 위해 발자국 남기는 여행
저 이상한 구름 놀음
그때는 목화밭보다 환한,

저 雨氣의 기운 먹고 꿈틀, 스멀거리며 날뛰는 미물,
짓밟힌 풀 한 포기 키 세울 준비하고
울부짖는 하늘
땅은 입 열고 기다린다


 

 

외할머니

 

 

  당신의 췌장 할퀴며 떠오르지 않은 어머니 내 놓으라고 보챕니다 옥수수 대 키대로 흔들리고, 천둥소리 잦은 창자 속, 차 오르는 모정, 당신 눈 속에 포도 수학하는, 매달린 수 만개의 포도알 어머니 얼굴로 박힙니다 햇빛, 다이아몬드 빛으로 쪼개져 눈을 찌르고 검붉은 포도즙 실핏줄 타고 어머니와 길게 서있습니다 한 알 한 알 포도 따내며 외할머니 당신을 뜯어내고 있습니다 '전 오이디푸스 충동'이라도 끌고 와 혼돈의 포도주 마시며 잠들고 싶습니다 뿌린 씨앗 거두지 않은 채 천상의 요람에 앉아 그네만 타고 계시군요  저 그네의 밧줄 끊어주세요 검은 둥지 잠자리 펴고, 포도밭 망치는 아이로 매달렸습니다 당신의 가슴 복판 급한 도랑물 훑어 내리고, 아궁이 밥솥 늘 태양이 끓이며, 다슬기 시퍼런 앙금 위장에 들이붓습니다 살아 튀는 별이 되어 강가에 달려가 죽은 나무에 목 매 답니다 통곡하는 당신의 췌장 할퀴며 보채는 외손녀, 옥수수 대 꺾어 후려치세요, 외할머니,

 

 

 

헐거운 집


 

 

사과꽃 향기 어지럽게 허둥거리네
벌, 나비, 불러놓고 질펀한 잔치
곰살거리는 봄 햇살이 공범자이네
그 산밑에 헐거운 집 짓고
산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뜰 앞,
금잔디로 깔리겠네
곡예 같은 삶 녹아내려
이슬에 몸 씻는 풀잎
먹물 같은 푸름이 가슴 쥐어뜯어도 좋겠네

바깥 세상 울퉁불퉁 수레소리 들려도
내 안의 길은 고요하네
멧비둘기소리 첨벙 붉은 눈썹 묻고
잊을 수 없는 일 잊고 싶네

사과꽃 지는 밤
달빛 끙끙대며
맨살 부비며 파고드네

 

 

 

 脫線


 

 

코 터진 스타킹 갯지렁이처럼 기어가고
보라 빛 립스틱, 눈썹은 초승달로 그렸어
물오른 꽃대궁, 너는 역류하는 영혼이 죄인가
연기 속 청춘은 폐가의 기둥뿌리처럼 삭아가고
낚시바늘에 걸려 버둥거리는 새가 되어 거리에 휩쓸리고있군
도시의 뒷골목 숨어있는 새 한 마리 너를 비웃고있어
전기 줄에 걸린 암소 같은 보름달
쓸쓸히 네 얼굴 만지며 녹슨 대문을 열어라 속삭이는군
도시에선 달도 비유되고 타락한 언어를 사용하는군
숲 속에서 빠져 나온 고행의 나무
뜯어말리면 더욱 엉겨붙는 엉겅퀴 꽃으로
소녀야, 호기심은 무지개 빛이야 곧 사라지는
기회 놓친 채 서성이면 영혼 메마르고 늘 쫓기는 꿈을 꾼단다
푸른 신호등 건너면 물방울 깨문 별이 울고있고
청춘은 멈추지 않는구나

 

 

 

그 여자


 

 

 

  햇빛 속 티눈 찌르는 사금파리 모아 제 살 찢으며 웃고있다 수정체 풀려 비를 부르지만 그녀 머리 위에는 노란 달 떠있다, 치마폭 달빛 그득 담아 둥지에서 훔쳐온 새알 부화시키며, 사막 횡단하는 큰 새 꿈꾼다, 모란꽃 같은 그녀, 간뇌의 자율 신경 조절 미아 되어 헤매고있다 독백 같은 중얼거림 자기 안에만 있다 꽃가마 타고 새색시 될 나인데, 돌담 밑 사금파리 다듬어 소꿉 사는 어린이, 노란 달 속에 머리 풀어, 뒷산 흔들리는 댓잎 모아 달의 지붕을 덮어주던 그녀,

어느 날, 피의 순환은 멈추고 돌담 밑 다시 깨지 않는 잠에 빠졌다, 물렁한 그녀의 뇌 속, 의사인 오빠의 손이 휘젓고 다니며, 실험실의 쥐가 되었다는 뒷소문만…

달 속, 소꿉 살던 그녀 살림 풀어놓고, 부화된 새는 열어둔 하늘 향해 날아갔다, 곱게 미친 그녀는 이 세상 다시 꽃이 되어 내려왔다

 

 

 

 

팔공산에 비가 내린다

 

 

 

  그녀는 펑펑 울고 있다 잠시 그치더니 머리꼭대기 위로 쏟아 붓는다 격렬한 흔들림에 파르르 손마디 떤다 집 허물고 타락한 그녀는 벌써부터 무릎 굽혀 삐걱거리며 남의 허름한 처마 밑에서 똑같은 약속 엿듣는다 죽은 불빛에 차압당한 까칠한 몸통, 서로 흡수하지 못한 진실 앞에 온몸 던지며 울고 또 운다

동화사 키 큰 부처님 눈썹 밑에도 흠뻑 적신다

나는 멀건히 운문雲紋 바라보며, 팔공산 중턱 풀썩 구름 깔고 앉아, 땀 흘리며 논메기탕 한 그릇 후딱 비운다 살아서 펄쩍뛰는 풋고추 한 잎 꽉 깨물면, 배나무 우듬지 끝에서 가슴 헤치고 울고있는 매미, 낙수소리에 화들짝 깨어난 봉선화 꽃잎 내 손톱위로 잠시 앉는다 붉은 물 손톱 밑으로 흐르고 젖은 나비 달콤한 꽃잎 귓바퀴 깨문다 온몸 빗물 따라 리듬 타고 꿈틀거리며 후끈 열을 발산한다
발정發情한 계곡의 물소리 뛰쳐나와 분수가 되고싶다며 내 손톱사이로 미끈거린다 발 밑으로 추락하는 물거품, 떠나올 때까지 그녀는 울고있다 조각상 어루만지듯, 팔공산 껴안고 울었다

 

 

 

빠져나간 자리


 

 

깊은 굴속에 있는 너를 끄집어내고 싶다
푸른 머리카락 일 때부터 끈적끈적
내 몸 속에 빠져 발버둥치는

목구멍으로 작은 불빛 스며들자
내 몸 속 스르르 밟고 담 넘어 가는 영혼
시간의 꼬리였다 날아오는 소문에
너는 거실의 불빛 따스하고
식탁의 인형이 일곱 개가 된다나
여자의 깔깔거리는 웃음
너는 왕이 되어 은 쟁반 굴리며
마당놀이 한 판의 주인공이 되었구나
너의 몸 한 번도 포개 넣어 본 적 없는데
내 혈관 속에서 늙어 가고 있구나
하얀 머리카락 된 너를 끄집어내어 서쪽 하늘 작은 별을 만들었다
내 몸 속에서 강물이 모든 구멍을 통해 넘쳐흐른다

 

 

 

 梅花


 

 

죽은 굴뚝나비 날개쪽지 밑에
쓰다버린 詩가 누워있다
푸른 詩를 써서 완두콩 방에 나란히 밀어 넣은 첫사랑
보내지 못한 문장, 그 씨앗 퍼뜨려 까칠한 빈가지 꽃이 열렸나
달음질치며 띄운 편지 소식 없어 至高至純함
겨울 이슬로 꽃몽오리 뒤에 숨었나

얼음집 깨고 눈꽃 열꽃이 피었나
깨어나지 못한 산의 두근거림
바람 달콤하게 살랑거릴 때
솔방울 구르는 빈산 햇살 욕심 것 끌어안는다
옆자리 꾸벅꾸벅 졸며 실눈 틔운 꽃망울
어느 날 산밑 환하게 핀 눈꽃
저 순결한 아침의 꽃 등불
꽃 그늘 아래 눈부신 사랑이 눕는다
낮은 속삭임 속 뒤틀려 울렁거리고
터지는 석류알 저 잘 익은 사랑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새 꽃잎 진다 푸른 눈발 철없이 날린다
 

 

 

 

섬진강에 섰습니다

 

 

 

섬진강, 내 발목 끌고 강가에 세웠습니다
강물에 상현달 매달려
목젖에서 자궁하구 까지 꿈틀거렸습니다
발가락 사이로 삐죽 목 내미는 모래,
주름진 발바닥 잔물결 삼키며 키득거립니다
시린 발끝에 치밀어 오르는
저 후들후들 떨리는 꽃들의 목젖
나를 떼밀고 천국에 밀어 넣는 함성
저 탯줄 따라 태어나고 씨앗 떨어져 또,
아무리 휘감고 돌아도 푸르러지는 탯줄
천 년 지나,
내 혀 밑으로 지구 멈춰서도
우주에 숨구멍 뚫어 싱싱하게 퍼덕거릴 것입니다

살구 빛 모래알 달빛 등 밟고 올라가
벚꽃 몽우리 입술 열어 젖혔습니다
재잘거리는 꽃술의 화음 행복해 귀를 막았습니다

재첩 아가미 내 품는 속살,
연어 요동치는 저 탯줄 훔쳐와
내 속에 섬진강 탯줄 하나 힘차게 키우고 있습니다

 

 

 

 

雨水 무렵

 

 

 

  불만스런 식욕에 투덜거리며 차분히 눕지 못한 머리카락, 부시시한얼굴, 발끝을 보다 직선으로 마주치는 장미 미용실, 제일 떡 방앗간, 궁전 노래방, 간판 읽으며 시장을 간다
立春도 지났고 몇 밤 자면 雨水인데, 겨울의 뾰쪽한 꼬리, 질기게 목덜미 잡고 달겨 붙는다, 비늘 돋은, 바람 깊숙이 아려오고, 순간, 성급한 재회로 부딪히는 손뼉소리, 그냥 피하고 싶은 회오리바람 되어, 먼지가 된 권태, 휴지가 된 실언들, 도리 킬 수 없는 악몽으로 마구 솟구친다, 그리곤 덧없이 뒷골목으로 사라진다
고무줄처럼 탱탱한 봄볕 한 줄기, 시장 사람들의 투박한 손마디 아래 얼비치듯 웃고 있다, 오늘은 쑥과 냉이를 만나 눈짓으로 인사하고, 망설이며 데리고 오지 못했다
싹이 노란 무 하나, 동태 한 마리, 하루 종일 악보 그리고 남을 콩나물 대가리 와글와글, 시장 어귀 담벼락 한켠, 바람 쪼그리고 앉은 눈꺼풀 쳐진 할머니, 작은 목판에 난전 펴놓은 도라지, 우엉, 연뿌리…
겨울의 끝은 검정고무신처럼 질기기만 하다

 

 

 

 

객사客死


 

 

 

찔레의 붉은 혈기로 파르르 속눈썹 떨리는 봄,
신들린 여자처럼 언덕 옆구리 걷어차며
산 잔등 밟고 선다
저 서러운 뻐꾹새 울음소리,
집 앞 미나리 강, 미나리, 어머니의 욕망으로 서린 피
햇살 타고 뇌쇄 되어 내 속으로 전이된다
부들부들 떨리는 어머니의 유언,

객사客死했으니, 객사客死했으니
저 쉰 목소리들, 머저리의 관습慣習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가슴에 매달린 감자 알 같은 동생들,
봄바람은 꽃잎 휘날려
절며 가는 상여 길 배웅하고,
달빛은 퍼질러 깔려 허리 덮는 보리밭
그 속에 누우면 가슴에 달빛이 젖고,

성난 감나무가지가 창호지를 마구 후려치는 밤을 보았다

 

 

 

열어 보고 싶은 꽃몽우리

 

 

 

  빙빙 울타리가 소년을 맴돌았죠, 봉긋한 꽃몽우리 바라보고 싶어서, 보일 듯, 열어보고 싶은, 소년의 마음속 피 빛으로 침입해 왔죠, 충혈 된 눈, 천지의 꽃 안개로 흐리고, 시신경 망원렌즈 속 확대되어 머리에 박혔죠, 화끈거리는 입, 천장에 매달려 조롱하고 있죠,

'인슐린' 주사 맞은 달, 부풀어올라 가슴 터져, 대지에 희디흰 젖 풀어 먹일 때, 꽃 몽우리 속 후-뜨거운 입김 집어넣어 소년의 눈빛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죠, 아, 기다린 듯 오므린 입술 여는 향내, 심장 뛰며 미끈거리는 줄기 칭칭 감아 댔죠, 허약하지만 소금기 품은 꽃, 새끼줄 매달리는 시간 속으로 끌고 다녔죠, 점점 물러서는 발자국, 더욱 쫓아가는 꽃향기, 소년의 감정 휘발되어 파도 끝에 매달리고,

 

 

 

 

 

 

 

흐리게, 산은 섬이 되어버린다
유령처럼 떠다니는 섬
남쪽으로 흘러서 시린 손 달그락거리는
붉은 자갈 손목 만지며 고향집 대문 앞에 선다
삐-꺽, 추억 열리는 소리
늙은 밤나무 태운 울먹이는 연기
시커먼 아궁이 속에 한때
어리석은 푸른 고백을 은밀히 감춘다
흙담 녹아 내리는 낙수소리에 산이 주저앉고
삭히지 못한 기다림 되어 마른기침 바수어 뱉어낸다
도란도란 봉창으로 고구마 옷 벗기는 소리
멀리- 동치미 항아리 입김 붓는 소리
섬은 바다로 떠나고 엉금엉금 산이 다가와 앉는다
파도소리에 익숙한 새 한 마리
하얀 눈 밟으며 바다로 가는 길을 묻는다


 

 

화명동이 있다


 

 

오일장서는 구포에서 숨가쁜 오르막길 올랐다
노래 한 곡 부를 정도 다리 힘 빼고 걸으면
우시장 나가 돌아오지 않는 소뼈 솟은 화명동
비닐하우스에 둘러싸인 작은 섬 같은 산 하나
소의 뼈를 깎아 세운 듯, 절벽과 빽빽한 나무들
그 산 한 번도 가르마 탄 적 없다
차바퀴에 깔려 죽은 뱀을 보는 날엔
산꽃, 들꽃, 바람 쫓아버리고 울었다
멍석 깔린 구름 보며 쉬어가면서 울었다
맨발로 수초에 할퀴고 돌 뿌리 채이며 달려온 낙동강 하류
밤이면 강물은 머리채 끌려 저 산으로 흘러들어 갔다
짐승들 먹이고 나무뿌리에 나누어주었다
저 숲 속엔 누가 살고있을까
살찐 거미 은실로 비단을 짜고 산발한 칡넝쿨
내 살을 찢고 궁금한 산이 들어와 앉는다 
온갖 벌레 갈비뼈 밑 스멀거리고 무서운 짐승들
병든 자궁 조금씩 먹는다
다시 꽃잎으로 태어나는 저 나무들 자궁,

흙 묻은 손 툭툭 털며 허리 펴고 일어서는 화명동 사람들,

 

 

 

 

나비의 죽음

 

 

 

모래 바람, 머릿속에서 솔잎 끝으로 인다
보내고싶은 문장으로 뭉쳐지지 못하고 흩어져
숨골 갉아먹는 벌레들,
내 잠자는 사이 나비가 되어 맨발로 날고 있다
훨훨 옷을 벗어버렸다
넘어지고 밟혀도 가슴 내어주는 흙의 음성,
컴퓨터 두들기던, 인형 접던 아이들 창가에서 외친다
와! 첫눈이다
시냇물 소리로 아이들이 흘려 내린다
흰 쑥부쟁이 꽃잎 지던 날
마법사는 하늘의 요정 불러 얼음 나비로 참새 발자국 덮는다
민둥머리 동생이 태어났고
솔갈비 타는 아궁이 속에 첫눈 내리는 소리
증조할머니는 참기름, 미역 들고 유령 같은 나비 떼 속을 걸었다
내 안에 하얀 이불 펴고 여섯 번째 동생을 눕혔다
어머니의 심장으로 다독거리며
찔레꽃 냄새로,

너희들이 내 몸의 밧줄을 풀어다오

나비 한 마리 겨울민들레 입술 위에 앉는다
혀 속으로 말려들어 덜컹 문을 닫았다
겨울민들레 물컹한 자궁 속에서 나비는 죽었다
죽은 나비 부활하여 일곱 번째 동생
파란 이불 펴고 눕혔다

 

 

 

 

가슴에 채소밭 만들고


 

 

삽 끝, 오십 년 묵은 가슴 덜거덕거린다
딱딱하게 만져지는 몽우리
꼬깃꼬깃 씨앗 하나 묻을 틈 없나
살찐 두엄은 어디로 갔나
밖으로 뻗은 날개 자르고
망상 펄럭이는 나무 가지 끝에서 내려와
깡통 뒤집어 씌워 패주고 싶은 네 얼굴 꼭꼭 밟아
잘 삭혀 살찐 흙 삽질한다
삽 끝 심장 북돋아 이랑 만들고 두둑이 가슴 올린다
반을 잘라 완두콩과 감자를 심고
저쪽 반에 반은 열무와 고추, 나머지는 시거리 상추와 깻잎, 쑥갓 심었다
가지와 방울토마토 몇 포기 세워야지,
오십 년 묵어 덜거덕거리던 가슴에
모든 만상 묻어 물주고 잘 삭혀 두엄 만들어
생각나는 씨앗 뿌려, 어느새 잎 돋아 여린 입 나풀거리며
나를 부른다, 빨간 손톱 무당벌레 찾아와 팔 잡아 흔든다
몽중夢中,
가슴에 심은 채소 쑥쑥 자라고,

 

 

 

 

밤섬은 낙원이다

 

 

 

날고 싶으면 그 섬을 찾아가야겠어
이상한 날개를 가진 새가 밤새도록 날고 있어
날카롭게 뒤틀린 오장 육부 패대기치고
날렵한 몸으로 별의 이마에 보석 박아주고 싶거든,
황조롱이 한 마리 별 눈썹 위에 앉고싶어
끝없이 공중 회전 하고있어
젖은 별 툭 떨어져 지친 길 초롱초롱 밝히는,

자갈마당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고
비틀거리는 그 섬에 앉아 귀기울이지
무자치 한 마리 아픈 네 허리 밟으면
놀란 새가 가슴을 파헤치고 있어
힘겨운 빌딩 걸어와 풀어헤친 앞가슴에 풍덩 안기며,

밤섬에 가면
이상한 날개를 가진 새가 지치지 않고 날고있어
악귀와 천사가 혼돈 하는, 그 섬엔
수소생명이 물을 마신 뒤 무거운 날개를 말리고
세상에서 벌레 먹은 날개 이 낙원에서 날고있어

 

 

 

지우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그림자를 지우세요, 남편이지만 남자인, 항상 다른 여자가 들어와 앉기를 틈 만들며, 어머니 가슴에 아버지 구두 발자국 짓밟아도 밀어낸 적 없으시죠, 고인 웅덩이 물 퍼 올리고 깨끗한 물 가득 채울 줄 아시던 어머니, 아버지는 눈멀어 거울 속 비친 참꽃 보시지 못했습니다
페미니즘이 어머니 가슴 열어야 했는데, 어머니 속에 있는 자신을 한번도 꺼내 보신 적 없는, 순종만 돌돌 말려 있었죠 찢어진 날개 밑에 일곱 개 나무 가지 뻗었지만 골고루 햇볕과 물 주기를 멈췄습니다, 가지는 병충해 입고 땡볕 가려줄 언덕 없어 심장은 파닥거리며 바다 찾아 떠나기도 했죠 어머니, 이승 나란히 아버지와 묻혀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자유입니다 자식눈치 조금도 보시지 마세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훨씬 젊으니까요 울컥, 눈물나는 봄날, 어머니께서 키운 복사꽃 그늘 밑에 오셔서 시를 읽고 외할머니께 올릴 제문도 지으세요, 무거운 짐 머리이고 가셔도, 탈탈 빈 자전거 끌고 앞서 가시던 아버지의 권위적인 모습, 싹 지워버리세요 영혼이나마 이 자식들 집 방문해주세요 어머니,

 

 

 

청동 오리는 집이 없다

 

 

 

한 꺼풀 옷 벗으며
강줄기 거슬러 오르는 새가 되었습니다
집이 있지만 집 버렸습니다
몸에 꼭 끼는 집 허물 벗듯
텅 비우니 날개가 달렸습니다
꽃잎의 몸짓으로 날아보니
거대한 꿈 잠자는 고요뿐입니다
가랑거리는 숲 속 기웃거리며
젖은 귀퉁이 한 자락 끌어 당겨
이불 삼아 잠이 듭니다
왼 종일 허탈하던 하늘
초승달 작은 별 허리 감고
눈물 핑 도는 노래 부릅니다
나는 맑은 새가 됩니다
집 없어도 강물은
내 몸 담글 것을 영원히 허락합니다
오늘은 꽃 같은 날개 은방울로 반짝입니다

 

 

 

바람은 봄을 회유한다

 

 

 

물소리에, 부풀어 오른 땅
나무 밑에 숨겨 두었던 구름 씨앗
두꺼운 비늘 털며 토닥거리다
유리 줄기 쏘아 올린다
돌발적인 변덕, 잎이 되고 꽃이 되는 것을
힘을 가진 봄바람 신이다
흙 일깨워 주고, 깊은 산 흔들어 준다
어디든 헤집고 다니며 생산과 번식 서두른다
색조 화장 곱게 하고 신부는
언덕에서 부케를 던지며 걸어온다
꼬리 긴 새가 재잘거리며
바람 끼 있는 신랑처럼 따라온다
바람은 웨딩드레스 자락 날리며
다투어 꽃 피는 봄을 사열한다
죽음 끝에 묻힌 할미꽃 끄집어낸다
바람은 오늘도 봄을 흔들고 있다
황사 바람 아니면 깊숙한 내 몸 열어 주리라
창가에 햇볕 쪼이는 씨앗
벚꽃은 어찌 그리 입 가볍게 차도에 뛰어드는지,


 

 

 

7월의 도남지

 

 

 

  수초더미, 짐승처럼 못의 옆구리 파먹는다 물어뜯기는 내 옆구리의 아름다움, 꽃등 켠 노란 손가락 달려와 부서지는 빛 주무른다 출렁거리는 바닥 꽝꽝 짓밟는다 뒤뚱거리다 주저앉는 물결, 움켜 안아도 비좁은 내 몸의 지퍼를 열고 뜨건 못이 눕는다 수심이 궁금하며 역사가 헐겁다 일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환단고기, 최초로 문자를 만든, 가림토 문자 가 수장되어, 오늘 그 유적의 집 헐러 물결 위로 떠올랐다, 일만 년 전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가, 그 때의 내 모습이 보고싶다, 옆구리 없는 내 모습과 같을까, 구름과 바람, 이슬처럼 억겁 속에, 새들은 길 묻지 않고 내 얼굴 쪼아먹어도 평화롭다

  7월의 여우 햇빛 어디에 감춰두는지, 반짝거리다 등뒤엔 푸른 비늘, 붉은 자두 물고기의 입술처럼 빠져있다 소금쟁이, 무심코 동그라미 그리고, 왕잠자리는 영토 넓히며 자기만의 제국을 세운다 그 제국 속에 낚싯대 드리운 사람들,
흔들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신다
페파민트는 태초의 물빛일까, 옥빛보다 가벼운 향기에, 최초 가림토 문자를 만든 하늘의 백성이,
내 안에 수심이 궁금한 못이 눕듯이 눕는다

 

 

 

 

소철은 무인도로

 

 

 

 

여름 별 옷을 벗고 내 몸 더듬는다
소나무 등줄기보다 거칠고 뭉텅한 몸뚱이를

동남쪽 창가,
열 들뜬 바람 열어주고 물주며
소나기처럼 뻗는 빛을 주었다
거센 팔 뻗어 팔 층 베란다 내 성으로 만들었다
눈뜨고 물고기 잠든 달빛 가리운다고
폭포처럼 달려오는 여름 별 떠밀어버린다며
성난 눈빛 내 팔 다섯 개 싹둑 잘라버렸다
비명은 목 줄기 타고 흐르고
흰 피 묻은 가위 끝 내 심장을 찔렸다

아프리카의 까만, 어린 자식들 오물거리는 헐거운 집이야
가난해서 꽉 들어찬 석류의 꿈이 있는 집이야
무인도로 떠나자고 보채는 자식들이 있어
평생에 가고 싶은 곳이지
팔을 거세해버린 주인은 몸 속의 아우성이 들릴까
여름별,
숨죽여 우는 나를 아프게 껴안는다

 

 

 

종남사種南寺 가는 길

 

 

 

너울너울 눈발 사이로
뒷산 오르시는 어머니의 치맛자락
산마루 올라서서 잿빛 하늘 문을 열고
쑥 들어가신다
쌀 몇 됫박 머리이고
내리 딸 다섯 등에 지고서
입 꽉 다문 감나무 가지사이로
울컥하던 어린 가슴

빨간 망개알 쓸쓸한 산중 밝히는
산새 한 마리 이끄는 화음 따라
산 하나 또 넘으면
치렁치렁 안개로 울을 만든 種南寺
야윈 손 떨고있는 개암나무
꿀밤나무, 앙상한 가슴팍
흰 소금 돋아 휘어진 정강이
독경소리 베고 잠드는 새떼들
점점 크다란 문은 어머니 소망을 열고
이제야 눈은 허물없이 쌓인다

 

 

 


흙 굽는 마을

 

 

 

  나무 뒤에, 수초 밑에, 손톱만한 낮 귀신과, 물관부 어디까지 이어져 마을이 커간다 콩줄기 하늘의 손목 잡아당기고 애호박 울먹이는 우주 하나를 감춘다 푸른 능금 손 뻗어 태양의 심장 움켜쥐면, 나는 덩달아 오르락내리락 그림자 따라 길을 낸다

내 속에 떠도는 흙 귀신 있어, 바람 드샌 골짜기서 흙을 굽는다는 꽁지머리 총각, 물안개 속에 일기 관측소 세우면, 물이 많아 자주 허물어지는 산이 일으켜 세운다 물의 나라에 순장되고 싶어, 가끔 젊음 뛰어들어 단절된 접속, 기웃거리는 낮 귀신이 된다, 자주 여기서 형상을 만들고 구우면, 발목에 매달린 낮 귀신들 뒤틀린 도공의 손 떠받든다

 

 

 

여름

 

 

 

창문마다 활짝 열리니 새를 날리라는 손짓이다
웅성거리며 서성이는 사람냄새
모든 것이 뛰쳐나온다
울안 갇혀있던 돼지 띠룩띠룩 욕망 흔들고
이빨 세운 길 잃은 개 어슬렁어슬렁 공원 돌며
방금 빗방울에 씻긴 찬란한 잎 뜯어먹는다
무관심 한 척,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던 남자
번뜩이는 개의 눈빛 힐끔 보다가 찔끔 고개 숙인다
의기양양한 살찐 돼지와 이빨 세운 개,
누군가 그 심장에 화살 꽂아야지
살을 빼고 독기 뽑아줘야겠군

구석구석 부패한 냄새, 물컹물컹한 하늘아,
주무르니 퍼런 앙금, 탄알처럼 여기저기 박히고
박힌 상처 삭히고싶어 웅성거리며 서성이는 사람들
노숙하는 육체들 허무감 느끼지 않아 좋아,

 

 

 

연극 구경


 

 

웅크린 벽 밀치며 뜰로 나서는 박수 소리
햇살 즐기던 개개비 한 마리 객석으로 날아가
시큰대는 가슴 속 파고든다
반짝이는 나의 리비도
폐허의 관절 밑에 묻는다
서해의 도리포 파도가 달려오고
왕소금 뿌린 숭어구이로 바람과 구름 삼키며
관절 밑에 묻은 잠자던 리비도 일으켜 세운다
곁 눈길로 개개비가 킥킥 웃는다
천장에서 북극성 유난히 빛을 내며
불끈거리는 내 척수를 핥는다
간지러운 발바닥

무대와 객석 교감하는 순간들
한 줄에 엮인 박덩이 뭉클뭉클 한다
빠져 나올 수 없는 시간 속
쓰러지는 저 빛의 공허
엄습하는 죽음의 입체감

어느덧 무대는 한 줄기 소나기로 떠났다

 

 

 

태몽

 

 

 

  고향의 흙 속에 뒹군다 어머니의 따뜻한 양수를 그리워하듯, 익숙한 배경, 촘촘한 기억들, 애기속새, 패랭이꽃들의 작은 몸짓 양파처럼 내 안에 웅크린다

낮아서 온순한 산, 그 산자락 온몸 던진 나의 과수원 뜀박질하는 햇살 진종일 오르내리면 잉잉거리는 열매들의 숨소리, 숨소리가 수상하다 땀으로 도망가도 깊이 배인 흙의 물방울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고여있다

능선 사이 바람 따라 다니며 산 꽃을 줍는다
산자락 꽉 메운 헤프게 웃고있는 복사꽃, 벌떼들의 울렁거림, 방관할 수밖에 없는 꽃 속에 내가 서 있다
벌떼에 떠밀려 두둥실 하늘로 날리다 어느새 나비가 되어 꿀이 흐르는 꽃 속에 갇힌다
이 꽃 속 저 꽃 속 환상의 자유시간,
맨발로 이슬 문지르며 뭉텅뭉텅 흙 밟는다
흙 내음 실핏줄 타고,

꿈이었다, 태어난 딸아이의 뺨은 복숭아 빛이었다

 

 

 

팽창 된 풍선

 

 

 

  날개 없는 풍선, 뚫린 구멍은 이 한강 뿐, 둔치의 풀꽃들 의식 잃은 채 나풀거리면 내 몸 속에 마른 씨앗을 받는다, 다리 위에서 역마살 낀 시인은 제 안에 건너지 못하는 다리 하나 세워 촘촘히 언어로 별을 심는다, 검은 별, 껌 딱지에 붙어 내 언어와 신음한다
서울은 잠수하고 싶다, 용궁을 부셔 말 많은 물고기들 고층 건물에 널려 말리고 싶은, 햇볕은 억센 비늘 눈부셔 슬며시 등돌린다, 멀어지는 강물, 강물, 꿈, 꿈, 어제 죽은 시신의 꽃 같은 이마가 탑 끝, 형상 꼬인 조형물, 이 빠진 턱에 걸려있다 스쳐 가는 바람 한 점, 물결도 어제처럼, 어미는 그 아들 잉태하고 싶어 오열로 입덧한다, 어린 강가에 검은 머리카락을 묻자 기억의 냇가에 뼈가루를 심자 물보석 반짝반짝, 훨훨 한강의 물새가 되어 뭉텅한 내 언어와 젖은 손을 잡는다

  풍선이 터지면 재만 남을까? 골목마다 유령 저벅거리고 하늘은 젖은 손가락 내밀어 물바다로, 노아의 방주를 탄 .운 좋은 뱀은 집을 짓고 나무를 심고 생식기가 복잡한 꽃은 나중에 심어야지, 아슬한 풍선 안의 서울, 여기 저기 잉태를 한다 마른 씨앗의 내 언어는 언제쯤 잎 피울까

 


 

 

동창회

 

 

 

열목어 쫓던 강가
보름달 떨어져 그 날의 신화 속으로 떠난다
왜 우리들이 낯선 이 숲 속의 방에 있지
그 때의 열목어가 은빛 강을 타고 올랐지
둑 밑 보름달 만한 농구대가
남성처럼 튀어 오르고
까치발로 선 철봉대는 키 자라며
운동장 귀퉁이 아카시아꽃 향기
무더기무더기 구더기로 쓰러져
버려진 모성처럼,

이 숲 속의 방이 그 때의 교실이 되고
스승이 되는 것을,
새파란 맨드라미를 그리던 너는 빨간 입술이 되고
나팔 불던 손은 장미꽃 움켜쥐는 손을 가졌구나
이름 모를 산새가 염장을 지른다
문설주 물어뜯으며 전설 풀어놓는다
잠 이룰 수 없지
기억은 고무줄처럼 늘어지고
열목어 쫓던 은빛 강에 보름달 빠져 있을까

 


 

가을은 버짐을 벗깁니다

 

 

 

소금 밟고 간 자국 멀쩡한데
가을은 제 몸의 마른버짐 아프게 걷어냅니다
실핏줄 움찔하는 살갗 터트리며
쏟아내는 씨앗들의 웅성거림
찾지 않는 계곡의 물소리
그 이름 말라 가는 가을이 있습니다

밥알 밟고 지나간 자국처럼 마마자국 몇 개
밤송이 머리에 부스럼 남긴 여름날
바람마저 미끄러져 가는 대나무 집 아이는
낮은 지붕에 갇힙니다
어느새 어둠 불어나 댓잎 속울음으로 울 때
따라 우는 작은 불빛
아이는 불빛 따라 벽 속에 숨었다 벽 속에 갇혔다 합니다
은하수는 제 그림자 흐르는 강물 주지만 물고기는 없었습니다
신발은 가을 풀처럼 낡아서 아이의 발목을 잡고
'얘야! 굽은 등을 넘고 가을이 왔어,
늙은 들꽃처럼 돋은, 네 얼굴의 마른버짐 벗겨 줄 거야,'

눕혀진 벼 알 위로, 풀먹인 옥양목에 노란 햇볕 가득
가을 나비 서러운 하늘에 복판 풍덩 빠진 아이는
맑은 얼굴로 촛불 켭니다
 

 

 

 

가지산

 

 

 

휘어진 등 뒤척이며 거대한 소 한 마리 누워
포유 할 때마다 들썩이는 능선
어리석은 눈망울 솟구치는 저 선혈,
펌프질해 온 산 뿌린다
군데군데 점등해 쩔쩔 끓고 있다

눈감고 귀 막아도
뒤 도랑가, 몰래 훔쳐 본 도살의 형상,
내 영혼의 집엔, 진저리 치는 환한 불꽃
긴 호흡으로 누르면 튕겨 오르는 노을 빛
여기 드러누워 단풍이 되었구나

 


 

   겨울비

 

 

 

  어린 가지에 입맞추며 봉분 덮고 흙 안아주고 싶다 살찐 가슴에 천천히 스며들어 작은 움직임에 귀기울이고 싶다 모든 것 덮은 체온은 땅 밑 생소한 마을에 닿고싶다 뿌리의 세계 엉킨 칡넝쿨 같지만 지상의 어둔 길보다 나으리라 마을에 개 짖는 소리, 냇가 발씻는 소리, 우리보다 순수한 맑은 세상 있구나

백야, 산짐승 굶주려 달의 싸늘한 귀떼기 물어뜯어도 어린 가지 싸매는 흰 깁이 되어 살 부비고 싶다

불청객, 굳게 다문 입, 문이 열리지 않는다
깡마른 다리 어루만지며 직선으로 딱딱한 땅에 꽂혀 일어서지 못한다

근질근질한 우리는 떠다 밀린, 흔들 깃발조차 없는 실직자, 형체 바로잡을 수 없는 이 겨울의 노숙자, 매서운 바람 지하도 허리 자르고 시간으로부터 박해받는다 저것은 번들거리며 길바닥에 누운 술 취한 노숙자, 천사가 되지 못해 지상에 버려져 하수도 스며드는 후끈한 눈물,
 

 


산 그림자 깊어 봄이 뒤뚱거리자

 

 

 

산 그림자 깊어 봄이 뒤뚱거리자
밤마다 온몸
꽃등 피어 올린다
지난겨울 타다 남은 램프 창가 깜박거리는데
질투하는 꽃등 몰려와 그 램프 꺼버린다

식은 무릎 한 줄기 봄 햇살 감겨
매화바람 달려와 때려도 일어설줄 모르는
허리 뒤틀린 아스팔트
파리하게 드러눕는 꽃등,
산 그림자 깊어 봄이 뒤뚱거리자
아- 산이 깊어 춥다
아직도,

 

 

 

덕유산 설경

 

 

 

알몸으로 떠다니던 마음,
자전거의 검은 체인 감으며 느릿느릿 흡입된다
하얗게 깡마른 숲은 호흡 가늘고
저 고요가 뼈저리다
저곳에 불을 지핀다
꿈틀꿈틀 꽃들 다투어 피고
젖은 추억 군데군데 봉화 올린다

겨울산은 삐쩍 마른 빈 손 이다
죄 없이 칼 잠자는 나무들,
손 떨며 지난날의 무거운 시간을 버린다
침입자였다고, 습관처럼 자책하며 황급히 빠져 나온다
타고 간 자전거는 없었고
벽에 걸린 설경 쏴- 바람 소리 낸다
야윈 침묵이다

환풍기 바람에 빨려나가 듯 서두른다
기차는 달리고 방금 본 덕유산 설경
저 더위에 녹아 내린다
창밖엔 무성한 숲이 잠든다

 

 

 

금호강

 

 

 

풍덩, 붕어 튀는 소리 들리는지요
온통 보라 빛으로 가슴 열고 있는 강둑
짙은 몽혼朦昏이 살갗 파고드네요

물소리 굽이도는 허리에
어우러진 물풀들의 그림자
뭉글뭉글 연두 빛 웃음 뿌리면
귀 열고 설레며 얼굴 씻는 꽃들

꿀꺽, 피라미 삼키는
왜가리 목젖 소리 들리는지요
자욱한 배꽃으로 옷 한 벌씩 지어 입고
고요한 시선 하늘에 꽂는
무리무리 지은 왜가리 떼 보셨는지요
내 몸은 왜가리 깃털이 되어
지나가는 바람 힐끗 뒤돌아봅니다


 

 

안개 집


 

 

잎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머리 속이 사그락거립니다
창안으로 넘쳐오는 외로운 하얀 손
눈감지 않아도 지워주는 무서운 실개천
가끔씩 시달리는 영혼 쉬게 해 줍니다
날개를 달라고 가족한테 말 한 적 없습니다
이미 날개가 달려 있었거든요 날지 않았습니다
점점 살찐 굼벵이가 되어 살짝 건드려도 넘어지는
속살 눈부신 굼벵이
하얀 동굴 횡단하는 굼벵이입니다

통통한 몸 속 자생하고 있는 해바라기
안개와 무리지어 살며 태양을 쫓아갑니다
생각과 마음이 자랍니다
보이지 않는 바깥으로 줄기 뻗어 발 내밀지요
안개집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무성한 줄기는 세상 밖으로 자란 생각들입니다

어느 날 굼벵이는 날개를 달고, 해바라기 고개 숙이지요

시든 정원에 저 많은 꽃 등 누가 달아 주는지요
꽃밭 지우는 밤 안개, 깜박거리다 하얗게 죽습니다
안개 속에 갇혀 있어도 내 안의 보석 훤히 보입니다

 

 

 

터널은 고양이를 생산한다

 

 

 

투명한 어둠 속
터널 온 몸 뜨겁게 연다
긴 내장 속 이글거리는 금속 광선 덩어리
눈 아픈 고양이를 생산한다
끊임없이 새끼친다

붉은 푸줏간, 비린내 코 박지 않는
사막에서 퍼온 끈적이는 모래 바람 들이키는
그 심장 조정하는 너는 악마다
느끼한 기름 파먹는 벌레다
벌레는 야금야금 내 가계부 찢어먹어
몸 부풀러 짐승이 된다
요절내 땅에 묻고 싶지만
썩지 않아 용광로 속 녹여도 더욱 싱싱해
영혼 없는 고양이 죽지 않는다
생산과 재생 번복하는
국우터널 빠져나오는 광선의 행렬

 


 

우물 깊은 집

 

 

 

꽃과 햇볕은 서로 숨결을 느낀다
자석으로 끌어당기는 건조한 숨결
목 긴 민들레 떨리는 바람 기다리고
제비꽃 통통한 봄비 기다린다
내 팔뚝에, 장단지에 번지는 반점들
붉게 돋은 뱀딸기 빤히 일몰 쳐다본다

나비 손님 떠날 줄 모른다
풍성한 빛 속으로 꽃가루 번져 탱탱한 나비들
새들 찾아와 가슴속에서 말한다

내 오금처럼 따뜻한 담장 너머,
우물 깊은 집이 있다

새벽 산길, 눈먼 네 아버지 아침 이슬 가득 쥐고 오면
젖은 발목에 매달린 빛의 무게
도랑 건너 접시꽃 핀 하얀 길 따라
정미소 가는 길, 아버지 지팡이가 된
그녀의 꽃밭은 담장 너머 있다

 

 

 

부추 밭


 

 

싹둑. 목 잘려도 다시 돋아나는 상처,
잘라내고 잘라내도 돋아나는 상처 잘 아물지 않습니다
흙은, 작별 기뻐하며 햇볕과 입맞춥니다
가까이 다가 온 도시의 이빨에 물어뜯기며
화두話頭 건지는 가로등 밤낮 깨어있습니다

밤은 고요해 물소리 들리고
식은 별 떨어져 밭이랑에 묻습니다
별 무덤 늘어나면
한 뼘 두 뼘 부추 밭 늘어갑니다
오늘은 가로등을 끄고,
별 무덤 열 수 없는 노란 달빛 속
물컹한 물 냄새에 온 몸이 떨립니다
비와 이슬로 빼곡이 푸른 살을 채웁니다


 

 

산책

 


산의 늑골 자박자박 밟는다
흙 닳는 소리,
이 정밀한 진동은 울창한 숲의 에테르
떨리는 침묵 속 느껴져 오는 열의 전달,
바람의 마찰, 뜨겁게 살갗 휘어 감는다
숲의 에너지에 떠밀려 계곡을 찾는다
물질경이 물 마음감아 올리고 돌 마음 강을 찾아 떠내려간다
저 소리들 내 안 꽉 차 흐르면 키 큰 꿀밤나무 위에 올라
구름결 펼쳐진 하늘 빛깔 색칠한다
달리는 강을 붙잡아 파란 물감 푼다

나비 등, 가을 문신 새긴 채 물을 마신다
파닥거리는 아픈 날개, 서늘한 외로움 산그늘로 짙어
백일 전 홍역으로 죽은 동생의 여린 혼령인가
찌르르… 아픔 흘러내려 뿌리 뻗는 소리,
아, 춥다, 등뒤서 나비 숨어버린다

전생에 나는 나무였으리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나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자주 고향 부른다
녹두는 푸른 레이스 두른 방에 심장이 커가고
수다스런 깨꽃 깨소금처럼 핀다
밥물에 푹 익힌 양대 잎, 풋고추 멸치 볶음
내 유년의 밥상머리,
그 여름 향기 속으로 산책한다
숲은 잠 속에서도 열, 빛, 바람으로 흔들린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갇힌 몸 헐고 사이버 공간 작은 집 짓고 싶어, 숲 속, 바다 밑, 맨발로 다녀도 낯설고 열매 없어, 돌아서면 무너지는 모래집이죠 흘러내린 모래집 덮쳐 낡은 바람이 지나가죠 꼬막처럼 웅크린 집 다시 지으면 심장 가로지르는 디지털 시대 쿵쿵 심장 박동 어쩔 줄 몰라하죠 빛의 속도처럼 몰려오는 소리들, 꽃잎 내려앉는 흙의 너그러운 공간,

  그 여자 몸 속에는 밀밭이 눕고 탈곡기 소리 새벽 공기 비틉니다 바람 흔드는 대나무 울음, 증조할아버지 진 묻은 망건, 누렁 소 울음조차 그 여자 허파 속에 갇혀있습니다 아날로그의 밀폐된 강은 투쟁하는 삽이며 방황하는 새입니다 입술은 태풍에 찢어진 나무 가지가 됩니다 아날로그, 디지털로 보일러를 놓고 그 여자 몸 속에 예쁜 홈페이지 방을 꾸며, 책상을 놓고 일기를 쓰며…

그 여자 아픈 옆구리 쪽문 내고 포올포올 나비 꿈 나릅니다

 

 

 

 

설국雪國

 

 

 

  영혼은 틈 벌어져 벌레의 집 된 지 오래, 식은 바닥 엎드려 책 속 활자를 씹으며 창백한 유리 틈 사이 나르는 먼지들의 소식, 그렇게 울었다
이토록 순백의 세상, 큰 발 밑에서 '네 죄를 사해 주마 네 죄를 사해 주마' 너의 순결로 내 푸른 죄 씻을 수 있다면,
모든 것 달려와 주저앉은, 흰 크레용만 색칠한 평등한 세상, 나를 살짝 끼워주세요, 탁탁, 서리는 김 속 밥 퍼담는 주름진 고향,

 

 

 

환상

 

 

 

안개는 창문이 없다
단풍 번지는 숲 향한 통로 없어 바람 갇히고
까칠한 흙 속 씨앗 깨무는 입술마저 없다
햇살 차랑차랑 굴러다니며
방아깨비 교미중이니
씨앗 덩달아 부화를 꿈꾼다
본능은 늘 미끈거리고
방아깨비 몸 깊숙이 알 슬어
빛 속으로 무너진다
뱃속 투명하게 부풀어올라 몸 태우는 숲
씨앗은 바람꽃이 되었다
밤 새 한 마리 날아오르고
흰 별꽃, 애기속새 깃 든
至純한 가을 바람이다
여름날 무성히 돋은 상처 위
까딱하면 흔들리는 코스모스
꽃 빛 물결은
동생 안은 어머니의 우유 빛 미소
고요한 바람꽃 앉아 있다

 

 

 

풀벌레 소리

 

 

 

깊은 어둠 흔들어 깨운다
냇물 같은 잠 갉아먹으며
명치끝 꼭꼭 찌르고
심장을 헤집으며
밤을 토막토막 자른다

밤새도록 진한 녹즙 액으로
비단 짜는 베틀 소리
또렷이, 또렷이,
서늘하게 토해 내는
불꽃같은 적막

 


 

 

침묵

 

 

 

어떻게 하면
단단하고 불덩어리 같은 미움의 알을
깨트릴 수 있을까,
공기 속에 떠도는 미세한 이 소리들
상처를 내고 그 상처 위에 덧칠하는
이 위험한 운행이 끝나기를,

 

 

 

봄비는 이스트 넣은 빵으로 부풉니다


 

 

치맛자락 꼬옥 붙들고
칭얼대는 아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눌러앉은 생각 조금씩 적시면
이스트 넣은 빵처럼 마음은
금방, 꿈같은 꽃을 피웠습니다
꺾이는 유채꽃 피웠습니다

앞서가기도 하고 뒤따라오면서
알 듯 모를 듯 발목 잠기는 음성
살짝 발로 차올리면 동그라미 그리며 고이는
내 시어詩語

먼저 돌아온 키 낮은 아파트 담길 따라
개나리꽃 보석으로 박혀있고
쫑쫑… 병아리 입 떼지어 몰려옵니다

웅성거리는 거리 빠져 나와
텅 빈, 길 위에서니
여기 저기 고여, 몸 푹 적시는 물방울
서두르지 않고 쉼 없이 내리는 봄비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오릅니다

 

 

 

 

숲속의 요란한 잔치는


 

 

 

정적이 송곳처럼 발톱 세운,
후- 불면 주저앉을 저 집을 방문한다
노랑, 빨강, 갈색, 지붕이 요란한 집
적외선 히터에 코드를 꽂고 덜컹거리는 책장을 넘기며
내 비밀의 다락방을 열어본다
첫눈 내린 초가 지붕 밑에 동화 속의
어린 토끼처럼 서있는 눈 맑은 소년

하늘로 가는 길 향해 연 날리고 있다
삐꺽, 나무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내 비밀의 다락방,
아무것도 새나갈 수 없는 먼지 가득한 창고,
저수지의 푸른 얼음 뼈 속 숨은 달빛으로 웅크리고 있다

마른 대나무처럼 서서 가슴으로 파고든다
앉을 수도 기댈 수도 없는 장승
그대로 헐벗은 그림자로 서있다
산불조심 문턱 없는 검문소를 어떻게 지내왔을까
금방이라도 확 타오를 것 같은 단풍 한 잎 깊숙이 품고
불이 되어 서있는 그대를
추방시켜야한다며 사방에서 아우성인 낙엽,

손님 떠나, 산문山門 닫으려는 마지막 잔치 헐겁고
열매 떨어진 자리 환히, 내 걸린 등불 꺼질듯,
파장의 바람 늑골 밑으로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