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방

글이 있는 고방 1

Ariell 2009. 10. 5. 02:44

   우포늪  / 강수정


  '우포늪은 고문서다.'
  우포늪지기 배한봉 시인의 "우포늪 왁새"란 시집에 실린 시 한 구절이다.
  이 시 구절을 생각하며 축축하고 스멀거리는 광대한 늪의 방에 들어섰다.
 
  봄비가 내린다. 늪은 봄비를 맞으며 안개에 갇혀있다.
  신기루처럼 나타난 광활한 늪은 아득한 대지를 연상할 만큼 넓었다.   
  늪은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 비밀스럽다. 갇혀있는 생물들과 뻘 속의 침묵을 물은 생성하고 순환시키며 생명을 피워내고 있다. 나는 이 방대한 늪을 좀더 가까이 관찰하고 싶어 다가섰다. 그곳엔 꿈틀거리는 생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슴을 열고 그 작은 생명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었다.
 
  봄비 속에 보일 듯 말 듯 뿌연 안개가 늪을 에워싸고 있어 선명하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맑은 날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신비롭기는 더없이 좋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늪을 지키는 아저씨의 망원경을 빌려서 먼 거리를 관찰했다. 망원경 렌즈에 잡힌 물 위와 늪 언저리에 철새가 떼지어 앉아있었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날다가 앉았다 날갯짓을 한다. 우리 일행들이 환호를 하자 마음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신이 나서 새 이름을 줄줄이 외워 듯이 말했다. 노랑부리저어새, 백로, 청둥오리, 두루미, 왜가리, 회오라기, 물총새, 학도요새, 물닭 등등 다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살고있다니? 많은 철새가 서식하는 것을 보면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물론 우포늪은 많이 알려져 있고 많은 시인들이 시를 쓰며 이 늪을 지키는 시인도 있지 않는가!

 

  1억4000만년전에 태어났으며 350종류의 물고기와 새, 식물, 수서 곤충들이 서식한다고 적혀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위의 시인의 말처럼 '우포늪은 고문서다.' 그리고 생태계의 역사학적 현장이다.

  저 사막의 나라 중동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슈메르인이 일으킨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생각하게 한다. 운하를 건설하여 사막에 밀과 과일나무를 심어 농사를 지었고 바빌론 신전을 세우고 가림토 문자를 최초로 만들었으며 바빌론 법전을 창조해 돌에 새겼다. 그리고 서사시를 지어 벽에 새기는 그들의 슈메르 문명을, 이 우포늪을 바라보면서 왜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득한 옛날 그들의 지혜롭고 우직한 아름다운 문명이 있듯이, 우리는 1억4000만년이나 되었다는 이 천연의 늪 우포늪에는 우리들만의 역사적 생태계 보고서가 고스란히 숨어있을 것이다. 슈메르 문명을 발굴하고 뒤지어서 빛나는 유산으로 세상에 알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이 우포늪의 고문서를 뒤지고 연구하여 세상에 알리면 좋으리라. 

 

  일행 중 한 시인이 야성적인 늪 언저리와 변두리를 잘 정돈하고 정비시켜 공원주변처럼 아름답게 가꾸면 찾아오는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쉬었다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엔 찬성할 수가 없었다. 늪이란 보존된 그대로를 건강하게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러주어야 한다 주변이 거칠고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가꾸지 않는 지금 이대로가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느냐!   
 다 돌아볼 수가 없었지만 방대한 둑을 돌면서 봄이 깊어 가는 늪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물 속에 몸을 담근 왕버들이 가지에 파란 싹을 틔우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부슬비와 안개가 묘한 실루엣을 만든다. 언제나 물에 발 담그고 서 있는 왕버들의 발가락이 얼마나 시릴까? 문득 내 발이 시려 왔다. 늪 근방 밭에는 보리가 발목을 덮을 만큼 자라 있었고 자운영풀이 새파랗게 자욱하다. 봄이 더 깊으면 천지가 자운영꽃으로 덮일 것이다. 분홍빛과 보라로 어찌 보면 연자줏빛의 자잘한 꽃이 무리 지어 피는 영롱한 바람소리 같은 꽃, 그리고 여름엔 무성한 물풀들과 가시연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여름의 우포늪을 보고싶다. 그때는 또 다른 움직임과 빛깔, 그리고 소리와 침묵이 뒤섞여 나를 맞을 것이다.
 
  아마 저 늪 바닥은 한번도 햇볕을 본 적이 없으며, 누룩처럼 가라앉은 흙은 객토를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오래 전에 국과 얼로 곡주를 담가 놓은 지도 모른다. 잘 익어 가는 술 냄새가 나는 듯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술을 퍼내지 않으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저 침묵의 늪, 그 속엔 말 없는 생물이 갇힌물을 정화시키고 생명을 키우며 때론 퍼덕거리며 노래부르리라
 
  '우포늪은 고문서다' 우리는 이 고문서를 소중히 읽고 연구하며 보존해야 할 것이다. 1억4000만년 전의 빛과 소리와 하늘과 땅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성스러운 성지다.  

 

 

 

  관망 / 강수정


 

 

  초여름 햇살에 고요가 잘 구워진 빵처럼 노르스름한 정오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고요한 정오를 바삭거리는 비스킷처럼 즐기고 있다. 적당히 잘 말려진 풍경의 공간에 마음 내려놓고 달콤한 적막을 주고받는다. 창 밖, 하늘이 나에게 선물해준 봉긋 봉긋이 함지를 덮어놓은 듯 소담스러운 산을 바라본다. 해가 갈수록 녹음이 짙어지는 저 숲 속이 한층 비밀스럽다. 밤이면 몰래 별이 내려와 숲 속으로 숨어들고 달빛은 유유히 내려다보며 숲의 어떤 비밀을 캐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밤에 움직이는 산짐승과 밤새들의 생존과 사랑의 이치를 밝혀주는 빛이 되어줄 것이다.

 

 

  방금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아른아른한 연둣빛에 왜가리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한다. 탁 트인 창공과 무상으로 얻은 저 넓은 정원을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보며 정오의 행복을 낚아서 마음의 바구니에 가득 담고있다. 그때였다. 한 아버지와 아들이 아무도 없는 고가다리 옆 초원의 풍경 속으로 찾아든다. 호기심을 더욱 가지게 하는 것은 며칠째 목격하는 풍경이다. 아버지는 생을 내려놓고 풀밭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이는 재빠르게 초원을 문지르며 뛰어간다. 그리고 나뭇가지 위 새들과 말을 주고받는지 고개를 태양 반대방향으로 젖히며 밥상보만한 구름을 머리이고 꼼짝 않고 서있다. 내가 아파트 거실에서 관망하는 그들의 풍경에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삼십대쯤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고 생이 남루해 보인다. 이 시간에 아버지들은 직장에 나가 일 할 시간이며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유치원에가 또래 아이들과 춤추고 노래할 때이건만. 그리고 학원에가 조기영어교육을 받거나 미술학원에 나가 그림공부 할 시간이지만 아이와 아버지는 이곳에 와서 서성거리다 한참 머물렀다가곤 한다. 

 

  며칠째 난 그들을 관망하고 있다.
  모습과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배경에 앉은 그들을 읽을 수가 있다. 초원은 그들을 더욱 아픈 풍경으로 그림을 그린다. 세상 밖에서 겉돌고 있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관망하며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호기심이다. 원래 아파트란 베란다를 앞에 두고 큰 창으로 바깥세상을 환하게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옛날에는 창호지로 바른 문을 닫으면 청각과 감각으로 느끼는 소리 외엔 볼 수 없었던 것과는 다르다. 고개 들면 환하게 온통 내다보는 아파트의 유리창 너머로 자연스럽게 며칠째 초원에 든 그들을 보게된 것이다. 아마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올려다보면 새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이십 층 짜리 높고 거대한 건물이 버티고 있다고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풀밭을 마구 뛰어다닌다. 혼자서 꼭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나비나 새를 쫓아다니는가 보다. 그런데 그 아이의 몸짓이 왜 저리 슬퍼 보일까? 옆에 아버지가 앉아있는데도 말이다. 등이 보이는 아버지의 굽은 뒷모습은 힘이 없고 아파 보인다. 실직을 했을까? 아니면 아내와 이혼을 했을까? 아니면 빚쟁이한테 쫓겨 피신해 갈 데가 없어서 여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병을 앓고 있을까? 호기심은 꼬리를 물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초원 옆 고가다리 위에는 세상으로 달리는 속도의 흐름이 끝없이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밖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말이라도 걸어 보고싶었지만 그 충동을 억눌렀다. 낯선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겠는가!

 

  젊은 사람들의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할 아버지가 일자리가 없으면 가정불화를 부르고 그리고 이혼을 부르기도 한다. 편부, 편모, 자녀가 많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높은 빌딩과 화려한 빛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 마천루 밑에는 그늘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일이 하고싶어도 못하는 사회는 진정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가 아니다. 특히 자녀를 둔 젊은이들이 생활고 때문에 절망 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관망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일부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정오에 이 곳을 찾아오지 않는다면 뭔가 그들의 삶이 잘 풀려서 일까? 아니면 더 나빠져서 일까? 나는 그들을 관망만 하였지만 마음은 저리도록 아파 온다. 어느 날 저 아이가 아름다운답고 행복한 모습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저 초원에 소풍이라도 와 주길 기대해본다.

 

 

 

 친구에게 / 강 수정
 

 

  만나기로 약속한 전 날 가을비가 내렸지, 개미가 행렬을 지어 땅 속 작은 구멍인 제집으로 돌아가면 비가 내린다고 했지. 문득 그 개미집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구나 다행히 낙엽이 비에 떨면서 개미집을 덮어주더구나. 
  일기예보는 내일 기온이 많이 내려가겠다고 보도하자 넌 전화를 걸어 옷을 따뜻하게 입고오라고 말했지. 따스한 네 목소리에 흩어지는 낙엽을 보며 꿈을 꾸었단다.    이튿날, 오락가락하는 빗속으로 달렸지. 포도엔 간밤에 떨어진 수북한 낙엽이 차바퀴에 깔리며 소멸의 길을 열망하더군. 엎드려 짓밟혀도 죽음처럼 침묵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은, 다음 세상 새싹의 거름이 되기 위하여 제 몸을 부수고도 나비처럼 날며 스산한 가을 풍경에 화려한 수를 놓더구나. 그것은 희망의 날갯짓이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광경이었어. 희망이란 뭐든 참을 수 있는 대단한 힘을 가진 언어이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빠른 먹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추었단다. 산 중턱 빛나는 단풍들이 눈동자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아궁이처럼 활활 불타더구나 달구어진 내 눈 속으로 얼마나 뜨겁게 도전해오던지, 그 열정에 어지럼증을 느끼며 눈을 감아 단다. 산은 봉우리마다 먹구름과 붉은 태양을 정수리에 교차시키고 있었단다. 그리고 묵묵히 서서 끌어안고 삭히며 쉬어갈 수 있도록 오목한 집을 마련해 주더구나. 나는 능선에 앉은 그 집을 방문하고 싶은 충동을 받았지만 날개가 없고 바람이 아니라서 가지 못했단다. 상상력을 동반한 영혼만 잠시 엿보고 왔단다.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어느 시골마을, 축제를 열고있는 현장이었지. 추수를 끝낸 넓은 들은 쓸쓸했고 성지를 향해 올라가는 듯한 길목엔 마을 주민들이 내다놓고 파는 산나물, 호박과 단감, 대추, 밤, 콩 등 추수한 곡식이 가득했단다. 사람들은 축제를 같이하기 위해 많은 곳에서 모여들었지. 고르지 못한 일기지만 행사는 시작되었고 축제는 휘모리군의 풍악과 춤추는 모습은 마음을 충분히 들뜨게 했단다. 그러나 비 내린 뒤 스산한 가을바람은 구름을 데리고 제 마음대로 하늘을 무대로 추상화를 그리더군. 자연의 힘 앞에 인생의 단면을 보는 듯 무상하더구나.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저만치 서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 모습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던지, 가슴에 뜨거운 강물 한 줄기 쏴-하게 심장 밑을 지나더구나. 그리고 오래된  친구사이처럼 낯설지 않았단다. 돌아 선 등뒤를 봐도 왜 그렇게 외로움으로 다가오는지? 아마 저물 녘 쓸쓸한 가을바람 탓인지도 모르겠구나. 우리는 나그네처럼 서로 외로움 밴 그림자 앞에 영혼이 아팠단다. 우리 영원한 친구가 되자. 조근조근 작은 목소리로 인생을 나누고 영혼 밝히며 뭔가 채워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자. 살아가면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도 겉모습 그대로 소중히 봐주고 존중하며 위로하는 친구가 되자.    
  어둠이 내리고 우린 바람 펄럭이는 집에 앉아 차를 마셨지, 친구야, 전생에 우린 앞집 뒷집 살던 친구였지, 소꿉친구로 사금파리 다듬어 집 짓고 밥하며 병원놀이하던, 그리고 소낙비 내리던 날 오동잎 같이 쓰고 집으로 내달리던 그런 친구 말이야!
 
  친구야! 집 떠나온 이곳의 밤은 너무 까맣단다. 불을 끄고 뒤뜰 야외공연장이 있는 숲을 보면 반딧불이 푸른 섬광을 번쩍이며 날아다니는구나. 별들이 소록소록 소풍 나오는 청명한 밤에나 볼 수 있는 품성 유순하고 공해 없는 이슬만 먹고사는 놈이라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어릴 적 고향 과수원과 들판위로 날아다니던 반딧불을 이곳에서 만나 마음 설레어 잠 못 든 밤도 있단다.
  지금 난 창가 방충망에 매달려 불빛 향해 한사코 돌진하는 나방, 밤벌레들과 놀고있단다. 여름 벌레들과 친구가 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구나. 내일 비라도 내릴는지? 제 죽을 줄 모르고 불빛 향해 돌진하는 나방과 하루만 살다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는 더욱 맹렬하단다. 하루 최선을 다하는 작은 곤충의 삶이 단순하고 깨끗해  보이는구나. 사람은 얼마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 깊이를 감지하며 순수를 아름답게 인정해 줄줄 아는 눈과 배려를 가졌는지? 이기심에 눈이 어둡고 작은 것에 연연하며 약속과 믿음을 쉽게 져버리는 사람들보다는 하루를 깨끗하게 살다가는 작은 곤충이 오늘따라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요즘,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심이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너와 난 서로 등뒤 외로운 그림자 받쳐주는 친구가 되자고 했지, 지금 무엇이 우리사이 벽을 세우고 있는지 알고있단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네가 깨달아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진실은 언제나 통하며, 그리고 진실한 눈을 가진 자만이 그 진실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친구야, 우린 지금 너무 멀리 떨어져있구나. 내 명상 속에 너를 깊이 가깝게 만나는 이곳 생활에 네가 빛이 되어준다면 큰 힘이 될 꺼야. 네가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처럼, 내가 너에게도 위로가 되리라 믿는단다. 보고싶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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