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 강수정
친구여, 나는 지금
따끈한 아랫목에 발뻗는 저녁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네
동해의 뜨거운 파도가 갯바위에 힘차게 때리던,
그 바다에 한 때의 의심과 좌절을 실어보낸 적 있다네
지금 남도의 바다는
긴 머리 풀어서 감는 수줍은 신부처럼 그윽하며
투명한 살결은 바다에 닿을 듯 말듯 희고 푸르다네
어디선가 뻘 냄새 고향 웅덩이의 깊은 침묵처럼 스며들어
코끝 시큰하여 물컹한 평화에 물결 지우고 있다네
어디쯤인가 낙지 꿈틀거리는 뻘 밭이 있는가 보네
갈대우거진 순천만이 가깝게 있다는데 아직 엿보지 못했다네
가슴에 걸리는 저 섬은 나의 섬이 되어
떠다니다 결국 내 안에 웅크리고 울고있네
울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냥 울고 싶었다네
친구여 지금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난날들 저 물결에 흩뿌리고
나 지금 여수 앞 바다에 서 있다네
낙동강 역 / 강수정
늙은 승무원 봄볕 소매 끝에 매달고 역사 안으로 들어서자
승객 없는 빈 의자 잠시 환하다
오랫동안 뭉그적거리다 떠난 승객의 온기가 방석만 하게 남아있고
행려자처럼 졸고있는 낡은 시계와 플렛흠과 달력과 떠난 기적소리,
늙은 승무원 돋보기를 쓰고
기둥 밑에 숨은 업보와 얼룩진 문서
관속에서 끄집어내 읽고있다,
지나가는 길손들아 너희들이 묻는다면
흙 묻은 손 피 묻은 손 씻고 낙동강 열어주리라
저 강의 입 열어 실토하게 하리라
느릿느릿 물렁물렁한 이 흐름을
하구가 껴안아야하는 철철 넘치는 포용을,
드문드문 늙은 창 두들기고 떠난 승객들 따라
밥태기꽃 기막힌 울음 터뜨리는 간이역
풍경이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늙은 승무원은 간이역 꽉 붙들고 있었다